“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헷세는 <독서의 기술>이란 책에서 그렇게 썼다. 그의 말대로 책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빚어낸 산물이다. 인간의 혼으로 만들어낸 ‘창조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저 무턱대고 읽는다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만 아니라 정신력의 낭비인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책을 읽을 때 집중하지 못한다면 헷세의 표현처럼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는 거기에 몰입해야 한다. 헷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독서도 다른 취미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오래간다. 책은 친구나 연인을 대할 때처럼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해주며, 그의 본성에 맞지 않는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후다닥 해치우듯 읽어서도 안 되며, 받아들이기 좋은 시간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 섬세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씌어져 무척 아끼는 책들이라면 때때로 낭독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흔히 다독(多讀)이 중요한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결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헷세는 이렇게 충고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택해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타인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삶과 맥, 아니 그 총체와 더불어 활발하게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

독서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많이 먹으면 살만 찔 뿐이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 편식(偏食)을 하면 건강에 해롭듯이, 책도 편독(偏讀)을 하면 정신건강에 해롭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다. 평생 열댓 권의 책만 끼고 살아도 진정한 독서의 맛을 깨닫는 독자들이 있다. 또 온갖 것을 다 집어삼키고 모든 것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 줄 알지만 그 모두가 허사인 경우도 있다.”

헷세는 또한 베스트셀러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경향을 꼬집는다.

“어떤 작품이 너무나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그걸 모른다는 게 창피해서 억지로 부득부득 읽는다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그럴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각자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을 읽고 알고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 코너를 꼭 들른다.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있는 책이라야 읽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가 곧 양서(良書)는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으면 독서의 조류(潮流)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대화에서도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으면 소외당할 것 같은 엉뚱한 두려움에 빠진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행복과 교양을 위한 필독 도서목록 따위는 없다. 단지 각자 나름대로 만족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정량의 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책들을 서서히 찾아가는 것, 이 책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것, 가급적 이 책들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늘 소유하여 조금씩 완전히 제 것으로 삼는 것, 그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베스트셀러에 약하다. 헷세가 “최우수 도서나 최우수 작가 100선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절대적으로 정확한 비평이란 것도 없다.”고 강조한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독서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세간의 평가와 합치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오직 기쁨을 맛보고 자기 내면의 재산에 또 하나의 소중한 보물을 새로이 추가한다는 바로 그 점이 아니겠는가!”

세간의 평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독서의 열락(悅樂)을 맛보면 되는 것이다. 헷세의 표현처럼 “각자 나름대로 만족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정량의 책이 있을 뿐”이며, 그것을 찾아서 읽으면 되는 것이다. 헷세는 “교양bildung이란 무엇인가 '양성하는' 것, 즉 인격과 인성의 도야를 전제로 한다. 그것이 없다면, 그래서 알맹이가 빠진 채 공허하게 이루어진 교양이라면, 거기에서 지식은 생길지 몰라도 사랑과 생명은 나오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교양의 목표는 특정 능력이나 기능의 향상이 아닌,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준비된 자세로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올바른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으려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그러나 헷세는 재독(再讀)을 권유한다.

“혹시 어떤 책을 처음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거든 얼마쯤 지난 후에 꼭 다시 읽어보라. 두 번째 읽을 때 비로소 그 책의 진수를 발견하게 되고,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글 고유의 힘과 아름다움이라 할 내면의 가치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두 번을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비록 책값이 만만치 않을지라도 반드시 구입하도록 한다.”

그의 말처럼 “두 번째 읽을 때 비로소 그 책의 진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헷세는 문학창작이 독서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경험한 바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간결한 형태로 형상화하는 습관은 진정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데 상당히 유익하다”고 설명한다. 독서를 많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관심이 생기는 것이리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명확히 알아가고 체험의 힘을 고양시키고 양심의 날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한은, 문학창작을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장차 작가가 되건 안되건 상관없이 당신은 맑은 눈으로 깨어 있는 유용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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